모던보이들의 생활

중얼중얼 | 2009/01/12 21:49 | 채니
다방이란 존재는 가장 물적으로 현대 지식인의 무기력(無氣力), 무의지(無意志), 무이상(無理想), 권태(倦怠), 물질적 결핍(物質的 缺乏), 진퇴유곡(進退維谷)된 처지를 나타내는 곳이다. (현민, '현대적 다방이란', 「조광」, 1938.6)


2차 출처는 장유정, 「다방과 카페, 모던보이의 아지트」, 살림, 2008

 

역사 연구의 관점 중에 과거의 모습을 통해 현재를 이야기한다는 관점이 있습니다.

원래는 가볍게 읽으려고 집어든 책이었는데 그런 관점에서 읽다보니 참 서글펐습니다.

아마 다방을 PC방이나 인터넷 게시판 정도로 치환한다면 100년이 지난 후의 지금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20c 초반의 '초현실적인 경성의 모습'에서 21c 초반의 한국이 투영된다는 건 입맛이 씁니다.

 

며칠째 읽고 또 읽고 있는데 손에서 놓아지질 않네요.

 

현대에도 몸을 사리고 있는 젊은이들, 지식인들이 잘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도 그 범주에 해당되는데 면죄부를 주고 싶지는 않아요.

그냥 그들 앞에 놓여졌던 현실 자체가 서글프다는 것입니다. 지금도 그러하듯이.

 

뒤에 덧붙인 저자의 멘트를 보면 더욱 와닿지요.

우리는 그들이 다방에서 어떤 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는지 알 수 없다. 그렇게 멍하니 보낸 시간들이 창작이나 생산을 위해 필연적으로 보내야 하는 묵상의 시간이었는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들 중에 상당수는 다방에 죽치고 앉아서 세월만 보내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아무 것도 생산해내지 못한 채, 다방에서 그렇게 세월만 가라 한 것은 아닐까? 그러나 슬프다.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던 지식인의 모습이 당시 식민지 조선의 한 표상인 것 같아서.


나서서 행동하지 않는 것은 칭찬 받을 일이 아니지만, 그 무기력이나 무의지 자체가 당연한 것처럼 되어버리는 사회 분위기가 허무주의에 선행하는 딜레마 같습니다.

지난 선거도 그러했으니까.

내가 나서도 달라지지 않는걸 여러차례 확인했더니, 가장 적극적인 권리가 가장 의미없는 권리처럼 되어버린 느낌.

 

살림지식총서 시리즈는 서점에 들르면 한두권씩 꼬박꼬박 구입해서 보고 있지만, 오랜만에 제대로 공감해서 여러번 읽은 책이었습니다.

 

 

*

사실 저 부분 말고는 가볍게 상식 선에서 읽을만한 부분도 많습니다.

특히 이상이 열려고 했던 카페 이름 부분에서는 배꼽 잡고 뒤로 넘어갈 뻔 했습니다. ㅋㅋ

 

 

  1. 잿빛하늘 2009/01/13 10:49 답글수정삭제

    하아..공감가네여 ㅠ_ㅠ 너무 공감가서 가슴 한쪽이 뻥 뚫린 것 같습니다. 내가 나서도 달라지지 않으니 그냥 손을 놓아버리는...그래도 권리는 주장하겠지만, 영 시큰둥한게 사실입니다. 현재의 제 심정을 잘 대변하고 있네요.

    저 책 기억해두겠습니다 ^^ 채니님 고마워요. 안그래도 요즘 가욋돈들이 우찌우찌 들어와서(+설날 세뱃돈 예정. 이나이에 세뱃돈 받는게 부끄러운 일이긴 하지만;) 이 참에 적당히 책이나 지를까 했었는데...^^;;

    • 채니 2009/01/20 04:33 수정삭제

      요즘 하던 게임이 무료화되다보니 더 불타올라 답글이 늦었습니다. ㅎㅎㅎ;;;

      사실 갈수록 시큰둥해지죠.
      더 극단적인 소리가 어제도 오늘도 쏟아지고 있는데 그냥 아무 생각 안 들어요. 강한 자극에 무덤덤해진 것인지... 갈수록 그들이 원하는 우매한 모습이 되어가는 것인지.
      선거와 투표가 가장 적극적으로 정치 성향을 표출하는 방법이라더니 아닌 모양입니다.

      책은 3300원으로 저렴해요. 저렴한 가격에 알찬 내용을 보여주기 때문에 제가 살림지식총서를 더욱 좋아한답니다. +_+ 구입해보셔도 후회는 없으실 듯.
      (저도 세뱃돈을 받기는 하는데;;;; 사실 못할 짓이 맞죠 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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